올해 3월부터 학원에서 중학생 대상 사회 강사로 일하고 있다.

한 번 애들을 가르쳐보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나는 고등학생때까지 정말 선생님이 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그쪽과 거리를 멀리 두고 살았다.  그런데 내 친구 중에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보고 그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애들을 가르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커졌다.

그러던 차에 처음으로 중학생 대상 사회 강사로 일하게 된 것이다.  과외 경력조차 없어서 애들을 가르쳐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학원 강사를 하게 된 이유라면 지금 내가 하는 공부에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지 않는 선에서 일할 거리를 찾다보니 파트타임으로 뛰는 학원 강사가 제일 적합했다.  그리고 사회 과목을 고른 이유는 그나마 사회가 내게 가장 만만했기 때문이었다.  영어는 나도 잘 못하기 때문에 애들을 가르칠 자신이 없었다.  수학, 과학은 손 대지 않은지 벌써 9년째.  2차방정식의 근의 공식도 기억나지 않는 마당에 답지만 보고 가르치는 것도 불가능.  그나마 할만한 것이 국어와 사회인데 그 중에서도 사회가 자신있었다.  국어라면 문학도 해야 하는데 이것은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사회 강사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애들이 말을 잘 들었다.  지금에야 깨우쳤지만 '탐색기'였던 것이었다.  애들 입장에서 내가 누군지 모르니까 일단 내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단계였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애들이 말은 잘 들었지만 수업할 때 고생했다.  중학교 사회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 문제였다.  1학년은 지구과학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세계지리를 배우고 있었다.  이것은 세계지리를 이해시키려고 하니 사회 영역을 벗어나 지구과학 영역에서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이러면 모르는 것을 안 배우는 것으로 설명해준다는 이상한 꼴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시험에 나올 만한 것만 뽑아서 계속 암기시켰다.  2학년 사회.  이것은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  세계사에 시험범위가 서양중세까지라서 참 편하게 갔다.  3학년 사회는 따로 다시 공부할 필요가 있었다.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고등학교까지의 정치, 경제와 대학교에서의 정치, 경제의 차이가 문제였다.  대학교에서는 '정답'을 물어보지 않는다.  얼마나 논리적으로 기술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고등학교까지는 그렇지 않다.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내가 애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교과서에 나온 정답'이지 대학교에서 하던 논리적으로 주장하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4월.  진도 조절에 실패해 2달에 걸쳐 나갈 진도를 3월에 다 나가버리는 바람에 수업할 것이 없었다.  학원에서 교재로 정해준 문제집을 다 끝내버렸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다른 문제를 풀려면 학원에 일찍 가서 문제집들에서 문제를 발췌해 따로 문제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항상 정시에 출근했다.  그래도 애들과 놀 수는 없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복습과 요령껏 문제 푸는 방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지문에 '파문'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무조건 카노사 굴욕'이라는 식이었다.  중2는 그래도 세계사 실력이 계속 좋아지고 있었는데 중3은 정치에서 계속 헤매고 있었다.

드디어 시험기간.  시험 전날 애들에게 사회 보강을 해 주느라 금토일월화수요일 연속 출근했다.  시험 전날 사회 보강이었지만 사실 사회 보강이라기보다는 사회 벼락치기였다.

내 경험상 시험 전날 사회 벼락치기는 교과서 한 번 주욱 읽고 문제 풀고 답을 맞추며 문제와 지문, 답, 해설을 외우는 것이 최고였다.  학교 다닐 때 어차피 시험 전날 교과서 잡아보았자 정말 기초적인 문제를 맞추는 선 이상으로는 점수를 끌어올릴 수 없다는 것을 체득했다.  정 안될 때에는 문제, 지문, 답만 외워버렸는데 이게 효과가 아주 좋았다.  그래서 2,3학년 애들에게 사회 문제집 교사용 해설서를 복사해서 나누어 주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사회 벼락치기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이 말에 애들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이 녀석들, 평소에 눈빛이 그렇게 초롱초롱했으면 얼마나 좋아.
"너희들이 오늘 죽어라 교과서 잡아봐야 내일 성적 안 오른다.  그렇지만 점수를 올리고 공부 시간도 줄이는 방법이 있다."
"어떻게요?"
애들의 열화와 같은 질문과 참여.  항상 수업 시간에 이러면 정말 피곤한 줄을 모를 거다.  평소에는 수업시간에 수업 안하고 놀 궁리만 하는 애들이 단시간에 벼락치기해서 점수 올리는 법을 알려준다고 하니까 장난 아니었다.
"이거부터 돌려."
복사한 것을 나누어 주었다.
"선생님, 문제지에 답이 써 있는데요?"
"응.  일부러 그렇게 복사한 거다.  오늘은 이걸 보면서 문제와 지문, 답을 눈에 익히는 거다."

먼저 2학년 보강이었다.  지문에서 답을 골라내는 요령을 전수해 주었다.
지문에 파문이 나오면 -> 카노사 굴욕
그라쿠스 형제 나오면 -> 반드시 맨 마지막부터 읽을 것.  잘 나오지만 틀린 부분 고르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 '성공'했다고 나온다.
도자기 조각 사진 -> 클레이스테네스 도편추방제
갑자기 폭등하거나 폭락하는 그래프 -> 흑사병
이런 식이었다.  그런 식으로 문제를 풀지 않고 '찍는' 요령을 알려주면서 한 번 같이 보았다.

그 다음 3학년 보강.  역시 이렇게 하는데 너무 산만했다.  시작할 때부터 애들이 같이 놀자고 내게 장난을 걸어서 화를 버럭냈더니 아주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떠들고 장난치고 잠자고 통제 불능이었다.
"듣기 싫으면 자습해!  듣는 사람 방해하지 말고."
보강해주는데 애들이 하도 안 듣고 떠들고 딴짓하자 나도 짜증이 났다.  그래서 듣기 싫은 사람은 나가서 자습하라고 했다.  진도는 당연히 빨리 나갈 수 없었다.  더욱이 애들은 시험이 내일인데 정치에서 나오는 용어를 제대로 외우지도 못했다.  이미 몇 번 복습한 것을 아직도 헤매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팔짝 뛸 노릇인데 시험이 내일인데 용어조차 제대로 외우지 않고 그런다고 들을 생각도 없고 놀고 떠들 궁리만 하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결국 한 시간 보강이 끝났는데 반도 못 나갔다.
"선생님, 저 자습해도 될까요?"
"응."
3학년 모두 자습한다고 했다.  그래서 다 자습하라고 했다.  벼락치기 요령을 알게 되어서 그것을 믿는 것인지 사회를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하고 싶은 것이 하고 싶은지 사회를 이미 다 보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중요한 것은 애들이 사회보강을 들을 생각이 없다는 것.

3학년 일본어 보강은 2번 해 주었는데 애들이 2번 해주는 동안 히라가나도 못 외웠다.  어차피 이것은 내가 자발적으로 해주겠다고 한 것이었고, 이미 2번 해주었기 때문에 더 해줄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애들 금요일에 일본어 시험이 있었는데 보강하러 가지 않았다.  어차피 글자도 못 외운 애들 앞에 데려다놓고 일본어 보강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전철을 타고 과학선생님과 함께 집에 오는 길이었다.
"저 진짜 애들 잘못 가르치는 것 같아요.  이번 애들 성적 보고 그만둘지 결정해야 겠어요."
"왜요?"
"애들이 과학이 다 50점도 못 맞아와요.  저는 기초 원리부터 설명해 주려고 하는데 애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 심정 이해가 되었다.  말을 잘 듣든 안 듣든을 떠나 애들은 애들.  뒤 돌아서면 까먹는 것이 일.  수업시간에 전에 배운 내용 물어보면 삼국지 쓰기 일쑤.  중세 물어보면 한국사 세계사 총망라해 전부 나오는 것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사회야 벼락치기로 된다지만 수학, 과학, 영어는 벼락치기로 글쎄...나 역시 벼락치기로 하기엔 너무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애들이 사회 망할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3학년은 60점만 맞아도 잘 맞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요일은 어린이날이라 학원을 가지 않고 금요일에 학원을 갔다.  애들 사회 성적이 궁금해 전화로 물어보고 싶었지만 애들이 시험을 망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원장선생님께 애들 시험성적 때문에 한소리 들을 각오를 하고 학원에 갔다.

"애들 점수 좀 볼 수 있을까요?"
원장선생님께서 애들 점수를 보여주었다.
"앗싸!"
속으로 소리쳤다.  애들 사회가 대박난 것이었다.  내 예상과 달리 3학년 애들은 점수를 상당히 잘 받았다.  사회가 80~90점이었다.
"애들이 제 예상보다 사회 시험을 잘 보았네요."
"선생님께서 노력해주신 덕분이죠."

중3은 내가 알려준 벼락치기 방법이 효과가 좋았다고 했고, 중2는 내가 찍는 요령을 알려준 것이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더욱이 천운도 따라주어서 중3 시험이 매우 쉽게 나왔다고 했다.

내 사회선생 생명이 조금 더 늘어났다.
글쓴이: 활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