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거의 스터디 셀러급의 만화책이 있었다.  이 만화책을 읽을 때만큼은 부모님이나 선생님께서도 뭐라 하지 않으셨다.  그 만화책은 바로...

먼나라 이웃나라

이원복씨가 쓴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을 때만큼은 만화책인데도 뭐라 하지 않으셨다.  물론 나중에 잘못된 내용이 많다는 비판도 들은 만화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거의 '교과서' 급의 만화책이었다.  한동안 6권 이탈리아로 끝났는데 나중에 일본도 나오고 한국도 나온 것으로 안다.  나는 딱 이탈리아까지 읽었다.  읽으면서 제일 아쉬웠던 부분은 이탈리아.  사실 이탈리아편이라기 보다는 로마사 편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영국, 스위스의 모습을 나름 비중있게 집어넣었던 반면 이탈리아편은 로마사 빼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방학 들어서 중2 가르치느라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진도는 근대 아시아와 1,2차 세계대전, 그리고 간략한 현대 세계사.  근대 아시아사가 재미없는 것은 나 역시 인정한다.  작년에는 가르쳐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2학년 사회에서 세계사는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해서 근대 아시아 직전까지 아시아에 대한 언급이 한 마디도 없다.  1학년때 배웠다고 하는 것 같은데 1학년 내용을 기억하면 그게 신기한 현상.  시험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산업혁명도 잊어버린 애들에게 1학년 내용을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무리.

더욱이 방학이라 공부는 안하는데 벼락치기 좋아하는 애들에게 이 부분은 최악의 단원.  그래도 아시아는 괜찮았다.  이거야 '이것만 외워'식으로 되기 때문이다.  일단 일본 메이지 유신을 제외한 모든 근대화 운동은 전부 실패.  조약은 무조건 불평등 조약.  나름의 이유는 설명해 주었다.  근대화 운동이 실패했기 때문에 식민지화가 촉진된 것이고 힘으로 강제적으로 맺은 조약들이니 당연히 불평등.  이 단원에서 중요한 것이라면 중국의 근대화 운동들과 우리나라의 근대화 운동들 중 성격이 비슷한 것 짝짓기.  동남아시아는 지도 외우면 되고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 때문에 망했고 오스만 투르크는 탄지마트 실패했고 이란은 영국과 러시아가 갈라먹었다는 것 정도.  조금 머리 아픈 것이라면 중국.  그래도 여기까지는 아직 할만한 수준.

문제는 제국주의와 1,2차 세계대전이었다.  여기부터는 사건 발생 원인이 여러 가지 얽혀있기 때문에 벼락치기를 즐겨하고 뒤돌아서면 다 잊어버리는 애들 특성상 관심 없으면 참으로 난감한 부분.  앞의 내용-특히 산업혁명과 독일, 이탈리아의 민족주의를 기억하고 있어야 하고, 외부 요인이 얽혀 있기 때문에 (예를 들면 러시아 혁명) 관심 없으면 참으로 어려운 부분이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 서양 고대, 중세
이것은 그냥 찍기 수준의 단원.  그림보고 풀어라,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관련 지문이 나오면 무조건 맨 마지막 줄부터 확인해라 등등 수준이 거의 원숭이를 우주선 조종 훈련시키는 수준.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 서양 근대
여기는 중요한 것 암기만이 살 길.  하지만 많은 애들이 정리를 해서 출력, 복사해 주었는데도 안 외웠다.  한결같이 하는 말이 중간고사 사회를 잘 보았으니 자기가 진짜 사회를 잘 한단다.  정말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더욱이 세계사는 초등학교때 안 배우니 중학교 와서 처음 배우는 것인데 안 외우고 무슨 수로 성적을 잘 받을 것이라고 큰소리 치는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  이 부분은 사건 전개 순서와 몇몇 핵심적인 말만 외우고 있으면 대충 중간 이상은 갈 수 있는 부분인데 중간고사 고득점의 여파가 너무 컸다.  안하겠다고 버티는데 답이 없었다.  결과는 중간고사에서 90점대를 받은 학생이 30점을 받아 돌아오는 등 천지개벽 수준의 폭락.

일단 2학년 2학기 중간고사 범위로 예상되는 범위까지 다 나가서 요약 정리를 다시 해 주는데 애들이 멍 때리고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방학때에도 쪽지시험 보고 숙제 내고 상당히 강하게 나가고 계셨지만 나는 최대한 널널하게 나가 주었다.  방학때 수학, 영어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 사회는 방학이니 널널히 나가준다고 애들에게 약속했다.  대신 수업 시간에 듣기는 하라고 했다.  그런데 애들이 듣지도 않고 멍 때리고 있었다.  내가 바로 직전 해준 설명에 대해 무엇을 말했냐고 물어봐도 대답 못하고 멍 때리기.  이름을 불러도 멍 때려서 대답도 못하고 그저 멍 때리기.
"너희들 시험 한 번 볼래?  40분에 80문제 한 번 쳐 볼까?  내가 방학동안 내 수업은 널널하게 해준다고 했지만 너희들에게 멍 때리고 있으라고 그랬니?"
사춘기에 방학.  듣고 뒤돌아서서 까먹으면 그래도 '그러니 애들이지'라고 생각할텐데 수업 시간 내내 멍 때려버리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떠드는 것은 자리 이동 시켜버리면 되고 자는 것은 깨우면 되는데 정말 멍 때리기는 답이 없다.  애들 상태가 갈수록 안 좋아져서 큰 맘 먹고 단체로 꾸짖었다.  하지만 꾸짖어도 끝나지 않는 멍 때리기.  알기 때문에 지루해서 멍 때린다면 눈감아준다.  하지만 모르는데 계속 듣지도 않고 멍 때리고 있으니...

아직 중간고사 때까지는 여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상태라면 그냥 답이 없었다.  사회 점수는 더 떨어질테고...지난번 기말고사에서는 다행히 조용히 넘어갔다.  그 이유는 고득점자 상당수가 대폭락을 했지만 저득점자 상당수가 대상승을 해서 애들 사회점수의 전체 학원생 평균은 소폭 하락에 그쳤기 때문이다.  대신 표준편차가 중간고사에 비해 매우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번 중간고사...가뜩이나 국사 선생님께서는 방학 중에도 매일 숙제와 쪽지시험으로 애들을 잡고 있었다.  애들에게 이 재미없어 보이는 단원을 조금 쉽게 넘기게 하는 방법 없을까?  애들에게 공부 부담을 주기는 싫고 그렇다고 공부 부담을 안 주면 그냥 멍 때리고 아예 공부를 안 해 버리고...

친구와 잡담하다가 우연히 먼나라 이웃나라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지!"
먼나라 이웃나라가 있었다.  아시아야 그냥 외우라고 하면 된다.  외울 것도 별로 없다.  1학기 기말고사때와 달리 애들 콧대도 꺾어졌다.  내 앞에서 '저 사회 90점이에요'라고 으스대며 뺀질댈 상황이 아니다.  1,2차 세계대전에서 핵심국가는 독일.  독일편에 분명히 있었다.  이 부분만 애들이 읽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까지는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독일편에 더해서 외워야 할 것이라면 영국-프랑스의 파쇼다 사건 정도.  애들이 읽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읽기만 한다면 지금 실력에서 확 뛰어오를 것이다.  더욱이 만화니까 딱딱한 교재보다야 훨씬 낫겠지.  정 안되면 내 수업시간때 읽게 시키면 되고.

1학기 내용은 먼나라 이웃나라를 보조 교재로 쓰기 안 좋은 면이 있다.  일단 고대 그리스는 아예 없다.  고대 로마는 이탈리아편인데 그게 만화책 한 권이다.  분량이 너무 많다.  서양 근대는 이 책 저 책 다 나누어져 있다.  역시 분량이 너무 많다.  하지만 1,2차 세계대전은 독일편에 몰려 있고 그 분량이 많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 번 이 방법을 애들에게 사용해 보아야겠다.  먼나라 이웃나라 독일편을 어떻게 입수하지?
글쓴이: 활활이
오늘은 학원 애들 시험이 6월 말이라서 자습지도를 하러 갔다.

전날 축구를 열심히 보아서 잠을 얼마 자지 못했다.

따르르릉
전화가 왔다.
"오늘 1시 반까지 오시는 거 아시죠?"
"예."

어?  오늘 2시 반 아니었나?

시각은 1시.  이미 늦었다.  부리나케 머리만 감고 뛰어나갔다.  그러나 30분 늦었다.

자습지도를 시작했다.  다행히 애들은 나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애들 자습지도라는 것 별 거 없다.  애들이 질문하면 질문 받아주고 애들 조용히 하라고 하고 자는 애들 깨워주면 된다.  그런데 애들이 질문하러 원장선생님께 가고 떠드는 애들도 없었다.  자는 애들도 없어서 그냥 졸면 이름 한 번 불러주는 것이 끝이었다.

나도 공부를 하기 위해 준비해간 것을 꺼냈다.  공부를 하는데 심심하고 졸렸다.  나도 자습할 때 이렇게 졸리고 심심한데 애들은 얼마나 심심하고 졸릴까?  그래도 안 졸고 잘 버텨내었다.

쉬는 시간을 보내고 2번째 자습시간이 되었다.  2학년 A반 여학생 한 명이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1학년 남학생과 찌그닥찌그닥 거리기 시작했다.

"너 내가 낸 숙제 다 했어?"
"선생님 숙제 안 내셨는데요?"
"냈거든?"

진도 나가기 벅차서 나 답지 않게 숙제를 조금 많이 내 주었다.  평소에는 숙제를 절대 내주지 않고 함께 수업시간에 푸는데 이번에는 진도 따라가기 벅차서 처음 숙제를 내 주었다.

"그거 칠판에 작게 쓴 거요?"
"그래."
"안 했는데..."
"너 그거 해."
칠판에 이름을 적고 숙제 범위까지 적어서 시간은 오후 5시까지라고 적었다.
"왜 저만 해요?"
"응?"
"얘도 같은 반이잖아요."
옆에 앉은 애도 2학년 A반이었다.  하지만 걔는 스스로 잘 하고 있어서 특별히 지시한 것이 없었다.
"얘도 해야죠."
"저는 왜요!"

어쩔 수 없이 둘이 자습시간에 숙제를 하게 되었다.  첫 시간에 하던 공부 대신 가져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유럽신화'라는 책이었다.  책 자체는 흥미로웠으나 문제는 심심함과 잠을 깰만큼 말초적인 재미를 주는 책은 아니었다.  그래서 점점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졸리고 심심해서 벽에 머리를 대고 앉아있는데 원장선생님께서 그 모습을 보셨다.
"박카x라도 하나 드릴까요?"
"예."

박카x를 먹으니 그나마 살 만 했다.

그 후 별 일은 없었다.  애들은 알아서 자습을 잘 했고 나는 졸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다음부터 자습지도 나갈 때에는 정말 재미있는 책을 가져가야겠다.
글쓴이: 활활이

모처럼 이태원 사마르칸드에 양꼬치를 먹으러 갔다.

참고로 우즈벡 식당 사마르칸드는 서울에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동대문에 있고 하나는 이태원에 있다.

개인적으로 이태원 사마르칸드를 동대문 사마르칸드보다 좋아한다.  동대문 사마르칸드는 길 찾아가기도 고약하고 음식도 별로였다.  이태원 사마르칸드는 이태원 이슬람 사원 가는 길에 있다.

5시에 도착했다.

메뉴판을 주길래 무엇을 먹을까 보다가 얇은 빵과 물만두, 양꼬치 2개, 닭꼬치 1개를 시켰다.

"빵 없어요."
빵이 없다고?  이거 우즈벡 식당이나 인도 식당에서 흔히 먹는 빵인데?  인도 식당에서는 '난'이라고 하는 빵인데 우즈벡 식당에서는 이름이 다르다.  중요한 것은 이 빵에 양고기를 싸먹는 것은 놀라울 것이 전혀 없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빵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생크림빵을 시켰다.

전설의 메뉴 계란후라이는 없었던 거 같다.  사마르칸드에서 매우 유명한 메뉴 중 하나가 계란후라이였다.  이게 유명했던 이유는 이해할 수 없는 가격 때문이었다.  양꼬치가 4000원인데 계란후라이도 그 정도 가격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뭔가 특별한 계란후라이인가 시켜보면 우리가 집에서 흔히 해먹는 계란 후라이 1개가 나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양꼬치가 4000원인데 계란후라이가 그렇게 이유없이 비싼지 많은 의문을 가지게 된 전설의 메뉴였다.

"꼬치는 40분 정도 걸려요."
"괜찮아요."
이 식당에 온 이유는 물만두와 양꼬치를 먹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양꼬치를 40분 걸린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닭꼬치 없어요."
"예?"
같이 간 여자친구가 양고기 꼬치와 닭고기 꼬치가 먹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시키고 나는 물만두와 양꼬치1개를 시켰는데 닭꼬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여자친구에게 물어보니 그냥 양꼬치를 하나 더 먹겠다고 했다.  그래서 양꼬치 3개를 시켰다.

물만두와 생크림빵은 금방 나왔다.
"이맛이야!"
예전 친구와 함께 왔을 때 친구가 만두를 너무 좋아해서 한 번 시켜보았는데 정말 맛있었다.  양고기와 향신료의 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맛이었다.  맛과 더불어 또 다른 특징이라면 만두 위에 우유 비슷한 것을 쳐준다는 것.  정말 맛있었다.  당근김치와 함께 먹으니 느끼한 맛도 없었다.

생크림빵은...그냥 먹을만 했다.  그다지 추천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혼자였다면 절대 안 시켰을 것이다.  뭔지 궁금해서 시켜보고는 싶었는데 마침 여자친구도 같이 가서 같이 나누어먹을 생각으로 시킨 것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생크림빵과 달리 딱딱한 페스트리 비슷했다.  그리고 속에 생크림은 없었다.

숯불로 가게 입구에서 양꼬치를 굽는 소리가 들렸다.
치익 치익
기름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40분이 넘었는데 양꼬치는 나오지 않았다.  주인은 컴퓨터로 무언가 보고 있었다.  이건 뭐 방망이 깎는 노인도 아니고...주인은 컴퓨터로 무언가 보다가 입이 근질거렸는지 가게 냉장고에서 콜라 한 병을 꺼내 바로 원샷하고 또 뭔가 보기 시작했다.

앞서 먹은 물만두와 생크림빵이 다 소화되자 양꼬치가 나왔다.  주인은 우리에게 양꼬치를 내오자마자 입구에 있는 화덕으로 들어가는 문을 닫아버렸다.

"오오!"
 
정말 제대로 구웠다.  양꼬치에 탄 부분이 하나도 없는데 속은 미디엄 수준으로 익었다.  왜 그렇게 오래 굽나 했는데 약불로 안 태우고 속까지 잘 익히느라 오래 걸렸던 것이었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서 약불에 오래 구웠나?  양꼬치를 화덕 위에 올려놓고 컴퓨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제대로 잘 구웠다.  더욱이 질 좋은 양고기였다.   오래 씹어도 양고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이것은 정말 좋은 양고기.  양고기에서 냄새가 심하게 난다고 하는데 질 좋은 양고기는 냄새가 그다지 심하지 않다.  여기저기서 양고기를 먹어본 결과 알게된 것은 양고기는 질이 안 좋을수록 냄새가 무지 심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확실히 좋은 양고기였다.  좋은 양고기를 약한 숯불에 잘 구웠으니 당연히 너무 맛있었다.

용산에서 공짜 자전거 빌려 서울숲까지 다녀오고 다음날 예비군 갔다 온 후 더위 먹었는지 힘이 하나도 없었는데 양꼬치와 물만두로 몸보신 잘 했다.


글쓴이: 활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