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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5 동전
  2. 2009.08.27 과거에서 온 편지 - 유치우편
예전 여행 다녔던 것이 기억나서 여권을 꺼내 도장들을 보려는데 동전이 몇 개 같이 나왔다.

우리나라 동전은 아니고 무슨 동전인가 하고 보았더니 체코 동전 50코룬짜리 2개였다.

지금까지 체코 프라하를 딱 두 번 가 보았다.  올해 초 여행 초중반에 한 번, 귀국할 때 한 번이었다.  처음 프라하에 갔을 때, 정말 환장하는 줄 알았다.  날씨가 얼마나 고약한지 10분마다 날씨가 바뀌었다.  눈오다 해뜨다 다시 눈오다 비오다 아주 사람 미치는 줄 알았다.

더욱이 프라하와 부다페스트는 어디를 먼저 보았느냐에 따라 우열이 많이 갈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웅장한 것을 좋아하는지,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지, 낮의 풍경을 더 좋아하는지 야경을 좋아하는지도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체코 프라하는 아기자기하고 낮의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대신 야경은 정말 별볼일 없다.  부다페스트는 웅장하고 야경이 정말 아름답다.  낮에도 부다페스트는 아름답지만 프라하보다 현대적인데다 도시가 정말 커서 아름다움의 밀도가 프라하보다 매우 낮다.  이런 취향의 차이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비슷하다.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이나 성 바투스 성당이 부다페스트에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고, 부다페스트 왕궁의 언덕이나 세체니 다리가 프라하에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이 프라하에 있다면 그것 하나만은 참 매우 정말 이상할 것 같다.  오래된 프라하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련미가 있는 건물이니까 이거 하나 예외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나는 부다페스트부터 본데다 날씨마저 부다페스트때에는 그래도 돌아다닐만 했는데 프라하는 그냥 사람 정신분열 만드는 날씨였다.  더욱이 원래 계획은 프라하에서 프랑스 파리로 기차타고 바로 넘어갈 계획이었는데 부다페스트에서 프랑스 파리로 가는 것보다 기차값이 비싸고 프라하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는 기차값도 너무 비싸서 모든 걸 다 바꾸어 다시 남행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류카센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절묘하게 내가 프라하를 간 날 프라하를 방문해 바투스 성당은 들어가지도 못했다.  구왕궁 입구부터 전면 차단한 것이었다.

프라하에서 날씨 때문에 고생하고 다음날 바로 부다페스트로 돌아갔는데 해가 쨍쨍이었다.  술을 즐기지 않는 내게 구야쉬라는 친근한 맛을 보여준 부다페스트가 프라하를 이겼고, 날씨도 이겼다.  더욱이 프라하는 입장료 받는 성당이 꽤 있었는데 부다페스트는 그냥 공짜였다.  부다페스트 성이슈트반 성당에서 이슈트반 대왕의 손 미라까지 공짜로 보여준다는 것에 '프라하 나쁜 곳, 부다페스트 좋은 곳'이라는 구분이 머리 속에 생겼다.


하지만 여행 경로의 마지막은 프라하였다.  프라하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프라하를 다시 가야만 했다.  부다페스트에서 프라하로 기차로 들어갔는데, 하필이면 중앙역이 아니라 홀레쇼비체역이었다.  전에 왔을 때에는 중앙역으로 왔기 때문에 길은 다 안다고 매우 자신하고 있었는데 홀레쇼비체역으로 떨어지니 그냥 정신이 멍할 뿐이었다.  홀레쇼비체역에는 '노숙자' 조차 없었고, 길도 전혀 모르는 처음 와보는 곳인데 도착시간은 새벽 4시였다.

숙소 정보도 없이 프라하로 와서 '정 안되면 공항에서 노숙하고 들어가야지'라고 생각했던 내게는 정말 당황스러운 현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일이 잘 풀렸다.  부다페스트에서 매우 좋은 가격에 환전한 체코 코룬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피씨방에 가서 어찌어찌 민박집 검색해 닥치고 들어갔다.  그래서 다행히 노숙은 하지 않고 민박에서 하룻밤 자게 되었다.

민박에 들어가니 내게 이것저것 30분 정도 프라하 관광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그 길을 따라갈 뻔했다.  나는 지도를 쥐어주어도 지도를 못 보기 때문에 그냥 이름들만 가지고 몇 번 트램 타라는 정보와 함께 정말 많이 헤매었다.

다행히 날씨는 맑고 따스한 4월이었다.  환장의 날씨가 아니라 날씨 자체가 너무 아름다웠고, 길을 좀 알고 다니니 다닐만 했다.  예전에 보고 그냥 넘어갔던 것들도 다시 보니 꽤 아름다웠다.  그렇게 프라하와 화해했다...사실 일방적으로 내가 화내고 내가 뒤돌아선 것이었지만 말이다.  프라하야 내가 싫어했든 말든 신경도 안 썼을 것은 당연한 것이고.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체코의 동전들에 대한 설명을 우연히 발견했다.  50코룬짜리 동전은 그림이 프라하라는 것이었다.  10코룬짜리 동전에는 브루노가 그려져 있는데 거기는 가보지 않았다.  그래서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50코룬은 내가 걷고 있던 프라하가 그려져 있다고 했다.

떠나는 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프라하를 조금 더 보고 싶어 아침 일찍 민박집에서 나와 돌아다녔다.  어차피 길이야 아니까 마구 걸어다녀도 되고, 또 신기한 것이 길을 잃어버리면 강을 따라 걸어가면 되었다.  그러면 카렐교와 구시가지가 나오고, 여기에서 전철역에 가면 길을 다 찾은 것이었다.  체코 프라하가 정말 환상적으로 보였던 것은 바로 떠나는 날 아침이었다.

하지만 50코룬 동전을 구하는 것은 우연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50코룬짜리 지폐도 있는데 지폐를 많이 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하철 표를 사며 100코룬을 50코룬짜리 동전 두 개로 바꾸어달라고 해 겨우 2개 구했다.

그렇게 구한 것이 바로 오늘 다시 보게 된 50코룬 동전이었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기념품을 사는 것이 싫어진다.  짐도 많이 차지할 뿐더러 돌아와도 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제도 많은데다 제대로 된 것은 비싼 경우가 많고, 비슷비슷한 것들도 많다.  냉장고 자석이나 엽서는 파는 곳은 팔고 안 파는 곳은 안 판다.

우리나라 관광지 가면 기념품이 한결같이 똑같다.  국내를 여행하며 모으는 것이 기차역 스탬프인데, 그것도 기차로 여행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고 큰 역에서만 기차역 스탬프를 찍어준다.

우리나라도 500원짜리 동전의 디자인은 각 도 및 시, 군 단위로 디자인이 다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글쓴이: 활활이
과거에서 온 편지.

내가 내게 보낸 편지가 몇 년 후 도착한다면...

대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그날도 인터넷을 깨작대며 재미있는 것이 있나 살피고 있었다.

"유치우편?"

뭔지 알 수 없었다.  유치한 우편이라는 건가?  이름만 보아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편지를 일부러 반송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반송에 사용된 소인을 모으는 것이었다.  만드는 방법은 일단 없는 사서함 주소로 보낸다.  그럼 해당 우체국에서 소인을 찍어서 반송시켜준다.  몇 명의 우표 수집가들이 하고 있었는데 대체적으로 선진국이었다.  끽해야 남미, 이집트, 모로코 수준이었다.

"오오...이거 재미있겠는데?"

그래서 유치우편을 나도 한 번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시시하게 일본, 미국 따위 선진국이 아니라 진짜 획득 자체가 기적이라 불릴만한 곳을 찾기 위해 지도책을 펼쳤다.

"바로 여기다!"
그것은 바로 내가 정말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아프리카였다.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세네갈, 콩고민주공화국 등등...내가 지금 가지는 못하지만 편지들이여, 너희라도 나 대신 다녀와서 거기 소식을 전해 주겠니?

하지만 문제는 돈.  당시 나는 내가 생활비를 벌어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생활이라 저축은 꿈도 못 꾸는데 어떻게 해외에 편지를 보내지?  그것도 한 두 통이 아니라 20여 국가에 보내는 것이었다.

돈이 없어서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인터넷을 계속 깨작깨작 만지다가 항공서간이라는 것을 찾아냈다.

400원이면 세계 어디로든 편지를 부쳐요 항공서간~

항공서간이라는 것이 있었다.  한 번도 안 써 보아서 몰랐다.  항공서간이라는 것은 편지지 한 장 크기의 봉합엽서인데 아무 것도 안에 집어넣을 수 없다.  대신 요금은 전세계 어디든 400원.  참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항공서간이라면 20개국도 8천원!"

그래서 항공서간을 한 뭉텅이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말리, 세네갈, 니제르, 부르키나 파소, 차드,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기니, 토고, 베냉, 코트디부아르, 가봉,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카메룬, 지부티, 콩고 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부룬디, 코모로, 마다가스카르.  총 22개국.

가보고 싶은 아프리카 국가를 주루룩 적어서 항공서간을 보냈다.  이때가 2007년 9월 17일부터 보냈다.

........

그리고 한 달 후.

돌아오지 않았다.
"안 돌아오네요."
"하하하하하.  아프리카인데 그렇게 빨리 돌아오겠어요."
아는 분께 이 일을 이야기했더니 좀 기다리라고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편지는 돌아오지 않고 어느덧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마지막 겨울방학.
"아직도 돌아온 놈이 없네요."
"아마 그거 종이 질 좋아서 휴지나 연습장으로 쓰고 있을 거에요."
내가 편지를 아프리카로 보낸 것을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던 그분이 내게 아프리카 애들이 종이 질이 좋아 휴지나 연습장으로 재활용했을 거라고 했다.  나는 아프리카인 뭐시기님에게 종이를 선물한 것인가?

계절학기를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니 에티오피아에서 편지가 와 있었다.

"네가 살아 돌아왔구나!"
드디어 하나가 살아 돌아왔다.  그 기분을 뭐라고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없었다.  먼 길로, 살아돌아올 가망이 없는 사지로 보낸 탐험대가 무사히 목적을 달성해 돌아와 내 앞에 서서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는 느낌.  한낱 종이조각 하나가 비행기를 타고 저 먼 아프리카 에티오피아까지 무비자 입국하여 체류하다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물론 편지였으니 무비자 입국이라고 추방당하거나 불법체류라고 추방당할 일이야 없겠지만...나도 못 간 곳을 이것이 먼저 다녀왔다!  그리고 그쪽의 무언가가...비록 도장 몇 개 찍힌 것 외에는 변함 없었지만 너무나도 큰 감동과 감격이 밀려왔다.

그렇게 한 개만 살아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전부 사망.

또 잊고 살고 있었다.  고향에서 봄을 맞이하는데 이번에는 에리트레아에서 살아 돌아왔다.  2008년 3월 14일.

머리속에서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는 아프리카의 선진국으로 탈바꿈했다.  편지를 잘 돌려보내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9월에 보내서 3월에 돌아왔으면 7개월 걸렸다.  이 정도는 '아프리카니까'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편지는 오지 않았다...





정말 덥던 2008년 7월 5일.  가뜩이나 여러 일이 있어 정신 없는데 아버지가 편지가 왔다며 내게 건네주었다.  세네갈에서 온 녀석이었다.

"푸학!"
거의 1년 걸렸다.  도장을 보니 세네갈에 들어가기는 잘 들어간 것 같은데 꽤 오래 있다 돌아왔다.  세네갈이 관광으로 유명하고 파리-다카르 랠리도 있고 이래저래 아프리카에서는 괜찮은 나라라고 하던데 그래서 장기체류하다 오셨나?  솔직히 10개월은 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제는 그냥 살아온 것이 기적.  거의 0%에 수렴하는 확률이 현실이 된 것이었다.





2009년 봄.  이것은 날짜를 정확히 모르겠다.  하여간 봄이었다.  3월쯤이었던 것 같다.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내게 편지가 왔다고 했다.  뭐 외국에서 왔는데 반송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내려갈 때까지 손대지 말고 잘 두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석과의 만남은 5월에야 이루어졌다.  예비군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서야 어디 갔다 온 녀석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모리타니!!!!!
사막밖에 없는 나라.  그냥 사막밖에 없는 나라.  영화를 봐도 그냥 황량하고 사막밖에 없는 나라. Heremakono라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를 찍은 감독의 나라.  하여간 그냥 사막.  척박함 등등등...

이놈은 대체 뭘 하다가 1년 반이나 되어서 돌아왔을까?  반갑기도 했지만 왠지 기적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그냥 웃음만 나왔다.  2007년에 내가 보낸 녀석이 이제야 힘겨운 여정을 마치고 돌아왔구나...그런데 힘겨운 여정일까?  하긴...그 사막 황량함 속에서 1년 넘게 있으려면 꽤나 고생했겠지.  아랍어는 좀 늘어서 왔니?  거기에서 먼지 좀 먹느라 고생했겠구나.  그래도 정말 돌아와서 다행이다.  돌아와서 다행이다.  돌아와서 다행이야...나의 과거.  나의 추억.  그것까지 가지고 돌아오느라 정말 고생 많이 했어.

이렇게 4개국에서 편지가 돌아왔다.  나머지는 아직 소식이 없다.  아마 안 돌아올 것 같다.

다시 한 번 이것을 해보고 싶다.  그런데 이게 한 번 부치면 최소 1년은 잡아야 하기 때문에 차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과거로부터 온 편지...나의 추억을 짊어메고 먼 길을 떠나 새로운 추억을 구해온다.

글쓴이: 활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