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를르의 이야기/일상의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86건

  1. 2009.10.03 변명 4
  2. 2009.09.28 벽화 2
  3. 2009.09.28 절규 2
  4. 2009.09.26 아기 염소 2
  5. 2009.09.26 카레
  6. 2009.09.21 이태원 냄새
  7. 2009.09.18 핫사니야 아랍어 방언
  8. 2009.09.18 냄새 2
  9. 2009.09.15 동전
  10. 2009.09.14 자료 구하기 특히 어려운 언어들

한때 정말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대학교 3학년때 처음 디카를 샀다.  소니 w-1을 샀는데, 참 내 속을 무던히도 많이 썩였다.  그 유명한 '멍점'이 생겨서 태어나 처음 '진상'을 부려보았다.  멍점 때문에 두 번 수리를 받았는데 오히려 멍점이 심해졌고, 덕분에 착불로 잘 수리받기는 했지만 말이다.

카메라가 작아서 그때는 참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매일 찍었던 것 같다.  사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사진'이라는 것이 들어간 책만 보이면 닥치는 대로 읽고 공부했다.  화각을 개조해 보겠다고 안경 렌즈를 구입해 별 뻘짓을 다 했고, 구도를 익히겠다고 사물을 하나 놓고 계속 찍어보았다.

그때는 정말 사진에 미쳐있어서 의외로 괜찮은 사진도 많이 나왔다.  워낙 많이 찍으니까 아주 많은 사진 중 한 두 장 괜찮은 사진이 나왔다.

그래고 대학교 4학년때 코닥 P880으로 바꾸었다.  이때부터 사진을 덜 찍게 되었다.  카메라가 큰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작을 때에는 정말 자유롭게 찍었는데 큰 것으로 찍으려니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카메라를 멀리하다 올해초 삼성 wb500을 구입했다.  P880 전원이 약간 고장난 것 같아 카메라를 바꾸려는데 당시 24미리 화각을 지원해주는 카메라 중 가격이 제일 만만한 녀석이 wb500이었다.  그러나 사진을 다시 많이 찍게된 것은 아니었다.  사진기만 바뀌었을 뿐, 사진을 안 찍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진을 안 찍다보니 실력이 많이 줄어들었다.  더욱이 아무리 찍어도 예전과 같은 느낌이 살아나는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예전에는 엉망으로 찍어도 사진을 보면 느낌이 살아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괜찮게 찍은 거 같아도 느낌이 없다.

다시 사진과 친해지려고 카메라를 종종 들고 나가는데 한 장이라도 찍는 날이 거의 없다.

조만간 사진을 다시 찍어봐야겠다.
글쓴이: 활활이

만약 철거만 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것도 20~21세기의 벽화라는 설명과 함께

한국인의 예술생활을 말할 거다.
글쓴이: 활활이

창문 너머 따스함 때문에 두드리는데 열리지 않는다.

죽을 만큼 두드려도 문은 닫혀 있었다.

그렇게 창살을 움켜쥐고 밤새 절규했나 보다.

(삼성wb500, 1/125s, F4.8, ISO 80)
글쓴이: 활활이
충격적인 카레 설거지를 마치고 집에 굴러다니는 동전을 박박 긁어모아 우유를 사러 나갔다.

햇볕이 너무 좋아 햇볕에 취해 걸어가는데 매우 익숙한 동요가 들렸다.

"파란 하늘~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동요 '아기염소'였다.  스피커로 나오는 노래라 어떤 과일장수가 저 노래를 틀고 돌아다니나 궁금했다.

할머니가 앞에서 아기가 탄 세발 자전거를 끌고 가고 계셨다.  자전거가 굴러가면 동요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 자전거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국민학교 3학년 때였을 거다.  하루는 담임 선생님께서 전부 나와서 노래를 한 곡씩 부르라고 하셨다.  잘 부른 사람은 무슨 동요 부르기 대회에 나갈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 모두 귀찮았다.  동요 부르기 대회에 나가느니 그 시간에 친구들과 공을 차는 것이 더 좋았고, 동요 부르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한 반이 50명 정도 되었고, 그 중 절반은 남자였다.  번호는 생일 순서대로 1번부터 남자, 남자 번호가 다 끝나면 또 생일 순서대로 여자 번호가 시작되었다.

마침 교과서에는 전설의 동요 '퐁당퐁당'이 있었다.  퐁당퐁당은 노래도 짧고 매우 친숙한 동요였다.  둘이 악수를 한 상태에서 퐁당퐁당을 부르며 가위바위보를 해 진 사람 손등을 때리는 놀이를 즐겨 했다.

남학생 모두 귀찮고 진지함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냥 대충 후딱 부르고 자리에 돌아와 떠들고 놀자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1번부터 남학생은 거의 모두 '퐁당퐁당'을 열창(?)했다.  한 곡 부르면 시간이 좀 가야 하는데 매우 회전이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남학생 전부 노래를 마쳤다.

그 중 한 명만 '아기 염소'를 불렀다.  그리고 그 학생이 반 대표로 나갔다.
글쓴이: 활활이
어제 친구와 파키스탄 카레를 또 만들었다.

이번에는 친구의 개조방안을 따라 감자를 갈아넣기로 했다.  지난번에는 너무 묽어서 카레 가루를 자꾸 넣었더니 너무 맵고 짜게 되었다.  구입한 가게 주인 아저씨 말로는 한국식으로 하려면 저눈을 조금 넣으라고 했다.

감자에는 전분이 있다.  감자를 갈아서 넣으면 분명 전분 효과가 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감자를 깎아 열심히 갈았고, 친구는 카레를 만들었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동안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친구의 반응이 이상했다.

방에 들어와서 먹어보니...

냄새와 색은 카레인데 아무 맛이 없었다.  그리고 너무 걸쭉했다.

"이건 정말 맛없다."
요리를 잘 하는 친구였지만 나는 이것만은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아무리 맛없는 카레를 먹어도 항상 맛있었는데 이건 정말 아무 맛이 없었다.  맨밥을 퍼먹는 맛인데 느낌이 너무 이상했다.
"이건 내가 뭐라 할 수가 없구나."
친구도 인정하고 말았다.

아침.  일어나서 카레를 먹으려고 보았다.  그러나 어제의 충격으로 인해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야, 이거 버리고 그냥 다른 거 먹으면 안 될까?  라면 끓여먹자."
"뭘 그걸 물어봐.  그냥 버려!"
버리려는데 밤새 떡이 되어서 버려지지 않았다.  국자로 퍼서 버리는데 주변은 완전 풀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버리다 버리다 물에 불려서 설거지를 하는데 덩어리째 떨어지는 그것의 공포는 손에 미끄덩 미끄덩 매우 불쾌한 느낌을 던져주었다.

다음엔 좀 더 생각을 많이 하고 계산해서 카레를 만들어야겠다.
글쓴이: 활활이
(2009.09.20)

전에 이태원에서 사온 파키스탄 카레를 드디어 해먹기로 했다.

정육점에서 사온 고기를 썩은 고기로 사와서 고기는 넣지 않았다.  구입할 때 한 시간 정도 졸이고 졸이기 싫으면 그냥 전분 넣어서 걸쭉하게 만들라고 했다.  그러나 카레 한 번 하자고 나가서 전분을 사오는 부지런함을 떨 우리가 아니었다.

물을 붓고 카레 가루를 넣고 재료를 대충 썰어서 집어넣었다.  하지만 완전 카레국이었다.  배가 고파서 가루를 걸쭉해질 때까지 계속 넣었다.  물을 넣고 졸여서 걸쭉해지나 가루를 많이 넣어서 걸쭉해지나 그게 그거 아닌가?

가루를 마구마구 집어넣었다.  카레 봉지를 뜯을 때부터 나던 그 두바이 냄새가 끓이니 방에 꽉 찼다.  원래 방에서 나던 냄새와 섞여 순수한 두바이 냄새도 아니고 한국 카레 냄새도 아닌 이상한 냄새가 나서 우리는 이를 '이태원 냄새'로 명명하기로 했다.

카레는 친구가 잘 요리해서 맛은 있었지만 너무 맵고 짰다.  예전에 파키스탄 요리는 맵고 짜다고 했는데 이것은 한국의 맵고 짠 맛을 뛰어넘었다.  매운 맛은 성균관대 앞의 '뭐시기 궁전'이라는 이란 요리사가 요리하는 카레가게에서 먹을 수 있는 수준에서 가장 매운 맛보다 더 매웠다.  그 매운 맛 시켰더니 요리사가 직접 와서 내게 '먹을 수 있는 맛 이상의 매운 맛도 해줄 수 있다'고 자랑했었다.

어쨌든 가게에서 같이 사온 난에 카레를 찍어 먹고 설거지를 하고 친구와 놀러나갔다.  한 두 시간 정도 놀다 들어왔다.

"워매 이태원 냄새!"
카레 냄새가 많이 빠져야할 시간인데도 방에 꽉 차서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분명 나가기 전에 데톨도 뿌리고 창문도 열고 나갔는데 그대로였다.

거의 후각이 마비되다시피 해서 자고 일어났다.  그래서 오늘(월요일)이 되었다.  일어나서 설거지를 하려는데 경악했다.

하수구에서 그 이태원 냄새가 계속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말 빠지지 않는 냄새다.
글쓴이: 활활이

검색어로도 유입이 하나도 없고 누가 핫사니야 아랍어 방언에 관심을 가지고 아랍어 방언 카테고리 안에 있는 핫사니야 아랍어 방언 게시판들을 보겠냐만은 멀티라이브러리에는 '핫사니야 아랍어 방언' 관련 게시판이 무려 3개나 존재한다.  현재까지 게시물도 몇 개 있다.

여기 들어가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다.  핫사니야 아랍어 방언 종합자료 게시판에 들어가보면 모리타니 아랍어 방언 회화가 올라와 있고, 핫사니야 아랍어 방언 어휘 게시판에 들어가보면 말리 아랍어 방언 어휘가 올라와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한 원인은 핫사니야 방언이 사용되는 지역과 자료들 문제 때문이다.

원래는 모리타니 아랍어 방언까지만 신경쓸 생각이었다.  말리에서 아랍어를 쓰는지 안 쓰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사실 당연히 안 쓸 거라고 생각했다.  올해 들어서야 나이지리아에서도 아랍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종교적 언어로서의 아랍어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언어로서 아랍어 말이다.

모리타니 아랍어 방언 자료는 이미 예전에 구했다.  아마 2006년에 구했을 것이다.  표준아랍어를 공부했지만 흥미를 잃어버렸다.  전혀 흥미를 유발할 거리가 없었다.  매일 기사나 보고 뉴스를 듣는 것 외에는 별로 쓸 일이 없었다.  아랍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무슨 말을 하는지, 이게 아랍어가 맞는지 알 수 없었다.  매일 기사만 읽고 뉴스만 들으니 당연히 싫증이 났다.  무언가 재미있고 자극적인 자료로 공부하고 싶은데 그게 없었다.  더욱이 아랍어 문법을 공부하다보면 복장이 터진다.  온갖 미사여구로 인터넷에 아랍어를 꾸며대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아랍어 문법은 어렵기로 소문났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아랍어를 꾸미는 '정확하다', '수의 언어다' 이러면 어려울 리가 없다.  외울 것은 처음에 많겠지만 나중에 가면 분명 쉬워져야 한다.  하지만 나중에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아랍어 문법이다.  정확한 언어라는 불어와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불어는 정확하다.  물론 그 정도의 정확함을 요구하는 언어가 불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여간 불어랑 비교해보면 아랍어가 왜 정확하고 수의 언어라고 하는지 이해가 어렵다.  정확하다는 것은 해석할 때 경우의 수가 적어야한다.  그런데 아랍어는 그렇지 않다.  아랍어 글자가 어렵다, 동사 변화가 어렵고 복잡하다, 그래서 아랍어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정말 막 입문한 초보들의 불만이고, 정말 어려운 것은 아랍어의 부정확성에 있다.  분명 작문을 할 때 아랍어는 지켜야하는 규칙이 매우 많다.  하지만 결과물을 놓고 보면 경우의 수가 많다.  아랍어 문법은 코란에서 태어났다.  코란이 딱 세상에 나오자 그것을 가지고 문법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코란을 보니 문법이 제대로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예외가 너무 많은 것이었다.  하지만 코란은 무조건 정답이다.  코란에 대든다는 것은 그냥 이교도라는 것이다.  즉, 정답이라고 하나 던져주고 공식은 너희가 알아서 만들라고 한 것인데 정답이라고 받은 것이 일관성이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답이니 어쩌랴.  공식을 마구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문법이 끔찍하게 어려워진 것이다.

'코란=표준아랍어'라는 공식은 영구불변이다.  하지만 말은 변한다.  그래서 방언과 표준아랍어의 거리가 엄청나게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의도적으로 방언을 없애고 표준아랍어로만 대화하게 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일시적으로 방언과 표준아랍어의 간격이 약간 좁혀질 뿐, 다시 벌어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아랍이 좀 넓은가.

하여간 이래서 아랍어에 대한 흥미를 거의 다 잃었을 때 내게 나타난 것이 바로 아랍어 방언이었다.  방언을 공부하면 좋은 것이 최소한 아랍 영화는 볼 수 있다.  그래서 아랍어 방언 자료를 모으다보니 모리타니 아랍어 방언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도 모리타니 아랍어 방언 자료를 구할 수는 없었다.  모리타니 등 서아프리카에서 사용하는 방언을 '핫사니야 방언'이라고 하는데 이 방언의 사전은 도저히 구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핫사니야 방언은 모리타니 방언의 다른 말인줄 알았다.

다행히 아는 분께서 도와주셔서 독일 사이트에서 핫사니야 아랍어 사전을 주문할 수 있었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책을 휘휘 넘겨보다가 심심해서 서문을 읽어보았다.

"이 사전은 핫사니야 방언 중 말리 방언을..."
엥?  말리?  아프리카 말리?  제목을 보았다.  제목에는 당당히 핫사니야 아랍어 (말리) 라고 되어 있었다.

핫사니야 아랍어 방언은 모리타니 외에도 서아프리카의 넓은 범위를 포함하고 있었는데 그때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되어서 핫사니야 아랍어 방언 카테고리에서 핫사니야 아랍어 회화 및 문법은 모리타니 아랍어 방언이, 핫사니야 아랍어 어휘는 말리 아랍어 방언이 올라가고 있다. 

글쓴이: 활활이
동물들은 사람의 손을 탔는지 안 탔는지 냄새로 안다고 한다.

올해 여행을 하면서 많이 먹기는 했는데 항상 저렴한 음식만 먹었다.  거의 전부 야간이동을 해서 샤워도 제대로 못하고 기차 화장실에서 양말을 빨고 세수와 머리만 감고 발을 씻으며 여행하고 거리나 후즐근한 식당에서만 음식을 먹었더니 나중에 몸에서 현지인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인 몸에서는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한다.  냄새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기억은 딱 두 개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 공항에 내렸을 때 톡 쏘는 수준을 뛰어넘은 쿡쿡 쑤셔대는 냄새 때문에 눈을 못 떴던 기억, 그리고 두바이 시티센터 안에 있는 거대한 가게에서 나던 냄새다.

놀라웠던 것은 마늘 냄새였다.  한국의 마늘과 유럽, 아랍의 마늘 냄새가 달랐다.  내가 맡고 느낀 바에 의하면 유럽, 아랍인 몸에서 나는 냄새와 유럽, 아랍에서 파는 마늘의 냄새는 비슷했다.

코가 안 좋은 것인지 왠만큼 냄새가 강하지 않고서는 다른 인종에게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잘 못 느낀다.  그냥 화장품 냄새가 많이 다르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가게나 시장에 가면 정말 다른 새로운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쌀벌레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9월 6일.  나와 친구는 이태원에 갔다.  이유는 밥을 먹고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사이에는 일종의 규칙이 있다.  고향에 갔다올 때 반드시 식자재를 들고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고향에 갔다오며 빈손으로 왔고, 이날 저녁을 내가 사는 것으로 약속을 지킨 것으로 치기로 했다.

터키 식당에서 케밥을 먹는데 도무지 터키에서 먹었던 그 느낌이 나지 않았다.  음식도 먹어보니 터키에서 먹었던 음식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나중에야 일이 있어서 다시 가서 먹어보고 알았지만 제일 터키 현지의 느낌과 비슷한 맛은 '라흐마준 피자'였다.  그 냄새...그 맛...똑같았다.

밥을 먹고 친구와 이 가게 저 가게 구경하며 돌아다니는데 인도, 파키스탄, 아랍 식료품을 파는 가게들에서 그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딱 한 가게에서 그 냄새가 확실히 났다.  정말 두바이에서 맡았던 그 냄새와 아주 비슷한 냄새였다.  그 냄새보다는 많이 연했지만 똑같은 냄새였다.

집에 들어와보니 친구가 카레를 해 놓았다.  그런데 냄새가 항상 맡던 카레 냄새와 달랐다.
"냄새가 다르네?"
"내가 너 몰래 비밀의 레시피를 넣어서 만들었어."
카레에 치즈도 넣고 미숫가루도 넣었단다.  그런데 그 외 무슨 재로가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  비밀이란다.

먹어보니 냄새처럼 먹던 맛이 아니었다.
"마늘이 없네?  고추도 없고."
우리는 카레를 해먹을 때 마늘과 쳥량고추를 듬뿍 집어넣는다.  마늘을 많이 집어넣으면 인도 카레와 냄새가 똑같아진다.  그리고 시중의 매운 맛 카레로는 우리가 원하는 매운맛을 만들지 못해 청량고추를 듬뿍 집어넣는다.

"마늘도 없고 고추도 매운 맛이 없더라."
글쓴이: 활활이
예전 여행 다녔던 것이 기억나서 여권을 꺼내 도장들을 보려는데 동전이 몇 개 같이 나왔다.

우리나라 동전은 아니고 무슨 동전인가 하고 보았더니 체코 동전 50코룬짜리 2개였다.

지금까지 체코 프라하를 딱 두 번 가 보았다.  올해 초 여행 초중반에 한 번, 귀국할 때 한 번이었다.  처음 프라하에 갔을 때, 정말 환장하는 줄 알았다.  날씨가 얼마나 고약한지 10분마다 날씨가 바뀌었다.  눈오다 해뜨다 다시 눈오다 비오다 아주 사람 미치는 줄 알았다.

더욱이 프라하와 부다페스트는 어디를 먼저 보았느냐에 따라 우열이 많이 갈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웅장한 것을 좋아하는지,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지, 낮의 풍경을 더 좋아하는지 야경을 좋아하는지도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체코 프라하는 아기자기하고 낮의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대신 야경은 정말 별볼일 없다.  부다페스트는 웅장하고 야경이 정말 아름답다.  낮에도 부다페스트는 아름답지만 프라하보다 현대적인데다 도시가 정말 커서 아름다움의 밀도가 프라하보다 매우 낮다.  이런 취향의 차이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비슷하다.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이나 성 바투스 성당이 부다페스트에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고, 부다페스트 왕궁의 언덕이나 세체니 다리가 프라하에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이 프라하에 있다면 그것 하나만은 참 매우 정말 이상할 것 같다.  오래된 프라하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련미가 있는 건물이니까 이거 하나 예외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나는 부다페스트부터 본데다 날씨마저 부다페스트때에는 그래도 돌아다닐만 했는데 프라하는 그냥 사람 정신분열 만드는 날씨였다.  더욱이 원래 계획은 프라하에서 프랑스 파리로 기차타고 바로 넘어갈 계획이었는데 부다페스트에서 프랑스 파리로 가는 것보다 기차값이 비싸고 프라하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는 기차값도 너무 비싸서 모든 걸 다 바꾸어 다시 남행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류카센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절묘하게 내가 프라하를 간 날 프라하를 방문해 바투스 성당은 들어가지도 못했다.  구왕궁 입구부터 전면 차단한 것이었다.

프라하에서 날씨 때문에 고생하고 다음날 바로 부다페스트로 돌아갔는데 해가 쨍쨍이었다.  술을 즐기지 않는 내게 구야쉬라는 친근한 맛을 보여준 부다페스트가 프라하를 이겼고, 날씨도 이겼다.  더욱이 프라하는 입장료 받는 성당이 꽤 있었는데 부다페스트는 그냥 공짜였다.  부다페스트 성이슈트반 성당에서 이슈트반 대왕의 손 미라까지 공짜로 보여준다는 것에 '프라하 나쁜 곳, 부다페스트 좋은 곳'이라는 구분이 머리 속에 생겼다.


하지만 여행 경로의 마지막은 프라하였다.  프라하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프라하를 다시 가야만 했다.  부다페스트에서 프라하로 기차로 들어갔는데, 하필이면 중앙역이 아니라 홀레쇼비체역이었다.  전에 왔을 때에는 중앙역으로 왔기 때문에 길은 다 안다고 매우 자신하고 있었는데 홀레쇼비체역으로 떨어지니 그냥 정신이 멍할 뿐이었다.  홀레쇼비체역에는 '노숙자' 조차 없었고, 길도 전혀 모르는 처음 와보는 곳인데 도착시간은 새벽 4시였다.

숙소 정보도 없이 프라하로 와서 '정 안되면 공항에서 노숙하고 들어가야지'라고 생각했던 내게는 정말 당황스러운 현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일이 잘 풀렸다.  부다페스트에서 매우 좋은 가격에 환전한 체코 코룬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피씨방에 가서 어찌어찌 민박집 검색해 닥치고 들어갔다.  그래서 다행히 노숙은 하지 않고 민박에서 하룻밤 자게 되었다.

민박에 들어가니 내게 이것저것 30분 정도 프라하 관광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그 길을 따라갈 뻔했다.  나는 지도를 쥐어주어도 지도를 못 보기 때문에 그냥 이름들만 가지고 몇 번 트램 타라는 정보와 함께 정말 많이 헤매었다.

다행히 날씨는 맑고 따스한 4월이었다.  환장의 날씨가 아니라 날씨 자체가 너무 아름다웠고, 길을 좀 알고 다니니 다닐만 했다.  예전에 보고 그냥 넘어갔던 것들도 다시 보니 꽤 아름다웠다.  그렇게 프라하와 화해했다...사실 일방적으로 내가 화내고 내가 뒤돌아선 것이었지만 말이다.  프라하야 내가 싫어했든 말든 신경도 안 썼을 것은 당연한 것이고.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체코의 동전들에 대한 설명을 우연히 발견했다.  50코룬짜리 동전은 그림이 프라하라는 것이었다.  10코룬짜리 동전에는 브루노가 그려져 있는데 거기는 가보지 않았다.  그래서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50코룬은 내가 걷고 있던 프라하가 그려져 있다고 했다.

떠나는 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프라하를 조금 더 보고 싶어 아침 일찍 민박집에서 나와 돌아다녔다.  어차피 길이야 아니까 마구 걸어다녀도 되고, 또 신기한 것이 길을 잃어버리면 강을 따라 걸어가면 되었다.  그러면 카렐교와 구시가지가 나오고, 여기에서 전철역에 가면 길을 다 찾은 것이었다.  체코 프라하가 정말 환상적으로 보였던 것은 바로 떠나는 날 아침이었다.

하지만 50코룬 동전을 구하는 것은 우연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50코룬짜리 지폐도 있는데 지폐를 많이 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하철 표를 사며 100코룬을 50코룬짜리 동전 두 개로 바꾸어달라고 해 겨우 2개 구했다.

그렇게 구한 것이 바로 오늘 다시 보게 된 50코룬 동전이었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기념품을 사는 것이 싫어진다.  짐도 많이 차지할 뿐더러 돌아와도 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제도 많은데다 제대로 된 것은 비싼 경우가 많고, 비슷비슷한 것들도 많다.  냉장고 자석이나 엽서는 파는 곳은 팔고 안 파는 곳은 안 판다.

우리나라 관광지 가면 기념품이 한결같이 똑같다.  국내를 여행하며 모으는 것이 기차역 스탬프인데, 그것도 기차로 여행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고 큰 역에서만 기차역 스탬프를 찍어준다.

우리나라도 500원짜리 동전의 디자인은 각 도 및 시, 군 단위로 디자인이 다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글쓴이: 활활이
이런 저런 외국어 자료를 구하다보면 자료가 없어서 정말 힘들 때가 많다.  구글 페이지 끝까지 근성으로 뒤지다 없으면 거의 포기 상태에 이른다.  몰도바어처럼 자료가 없는 것은 참을만하다.  하지만...자료가 있는데 양에 압도되어 못 찾는다면?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아래의 질문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료의 양은 검색의 품질을 보장할까?

어느 수준까지는 자료의 양은 검색의 품질을 보장한다.  분명 필요충분조건으로 작용한다.  정보가 다양하니 자료의 종류도 많아야하고, 자료의 종류가 많으니 양은 저절로 많아지는 거다.  자료의 양이 많아서 검색의 품질이 좋아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자료의 종류가 많기 때문에 자료의 종류당 하나만 있어도 자료의 양이 많아지는 거다.  하지만 일정수준의 양을 넘어서면 자료의 양은 절대 자료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A라는 파일이 있을 때, A라는 파일이 100개 있다고 해서 검색 품질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거의 무한한 인터넷상 자료에서 필요한 것만 고르는 것은 꽤 중요한 능력이다.  그러나 거의 애초에 불가능한 놈들도 있다.  그 이유는 이름이 같은데 둘 다 유명하거나 내가 원하는 쪽보다 다른 쪽이 더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언어 2개...지금도 틈틈이 찾아보고 있는 언어를 들자면...

1. Maltese
maltese 라는 개가 있다.  나는 이 개를 별로 안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포메라이언이나 진돗개다.  내가 몰타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 개를 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몰타어는 Maltese language이다.  검색해보면 개가 참 많이 나온다.  몰타어는 아랍어 방언에 이탈리아어와 영어가 섞여 태어난 언어로, '라틴 문자로 기록하는 유일한 아랍어 방언'이라는 별명이 있는 언어다.  이 교재가 보일 때 그냥 손에 넣었어야 했는데 그때는 '이게 무슨 소용이 있어'라고 생각했다.  정말 후회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교재를 구할 수 없고 인터넷에서는 개만 나온다.

2. Georgian
미국 조지아 주는 정말 유명하다.  할 말이 없다.  Georgian에는 '조지아주의, 조지아주 사람'과 더불어 '조지 왕조의', '조지 가문의'까지 있다.  조지아주와 그루지아 중 누구가 더 유명하냐고 물어본다면...당연히 조지아주다.  물어보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물론 작년에는 그루지아가 조지아보다 유명했던 적도 있다.  러시아가 그루지아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도상에서 찾기도 고약하고 가치가 매우 높은 국가도 아니다.  차라리 그 동네 체첸이 몇백배 더 유명할 거다.  게다가 그루지아어는 키릴 문자나 라틴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전혀 다른 그들만의 글자가 있다.  검색이 더욱 고약할 수밖에 없다.

몰타어와 그루지아어의 공통점이라면 몰타와 그루지아의 형용사가 고유한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둘은 자료찾기 어려운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타국의 통치를 받아 지배국의 언어가 통한다는 점이다.  몰타는 영어가, 그루지아는 러시아어가 통한다.  그래서 이들 언어 자료를 찾을 때면 정말 끔찍하게 많은 무수한 자료를 마구 뒤져야 하는데, 노력을 투자하는 것에 비해 수입이 형편없다.

무슨 한강에서 사금캐는 기분이다.
글쓴이: 활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