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온 편지.
내가 내게 보낸 편지가 몇 년 후 도착한다면...
대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그날도 인터넷을 깨작대며 재미있는 것이 있나 살피고 있었다.
"유치우편?"
뭔지 알 수 없었다. 유치한 우편이라는 건가? 이름만 보아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편지를 일부러 반송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반송에 사용된 소인을 모으는 것이었다. 만드는 방법은 일단 없는 사서함 주소로 보낸다. 그럼 해당 우체국에서 소인을 찍어서 반송시켜준다. 몇 명의 우표 수집가들이 하고 있었는데 대체적으로 선진국이었다. 끽해야 남미, 이집트, 모로코 수준이었다.
"오오...이거 재미있겠는데?"
그래서 유치우편을 나도 한 번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시시하게 일본, 미국 따위 선진국이 아니라 진짜 획득 자체가 기적이라 불릴만한 곳을 찾기 위해 지도책을 펼쳤다.
"바로 여기다!"
그것은 바로 내가 정말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아프리카였다.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세네갈, 콩고민주공화국 등등...내가 지금 가지는 못하지만 편지들이여, 너희라도 나 대신 다녀와서 거기 소식을 전해 주겠니?
하지만 문제는 돈. 당시 나는 내가 생활비를 벌어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생활이라 저축은 꿈도 못 꾸는데 어떻게 해외에 편지를 보내지? 그것도 한 두 통이 아니라 20여 국가에 보내는 것이었다.
돈이 없어서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인터넷을 계속 깨작깨작 만지다가 항공서간이라는 것을 찾아냈다.
400원이면 세계 어디로든 편지를 부쳐요 항공서간~
항공서간이라는 것이 있었다. 한 번도 안 써 보아서 몰랐다. 항공서간이라는 것은 편지지 한 장 크기의 봉합엽서인데 아무 것도 안에 집어넣을 수 없다. 대신 요금은 전세계 어디든 400원. 참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항공서간이라면 20개국도 8천원!"
그래서 항공서간을 한 뭉텅이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말리, 세네갈, 니제르, 부르키나 파소, 차드,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기니, 토고, 베냉, 코트디부아르, 가봉,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카메룬, 지부티, 콩고 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부룬디, 코모로, 마다가스카르. 총 22개국.
가보고 싶은 아프리카 국가를 주루룩 적어서 항공서간을 보냈다. 이때가 2007년 9월 17일부터 보냈다.
........
그리고 한 달 후.
돌아오지 않았다.
"안 돌아오네요."
"하하하하하. 아프리카인데 그렇게 빨리 돌아오겠어요."
아는 분께 이 일을 이야기했더니 좀 기다리라고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편지는 돌아오지 않고 어느덧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마지막 겨울방학.
"아직도 돌아온 놈이 없네요."
"아마 그거 종이 질 좋아서 휴지나 연습장으로 쓰고 있을 거에요."
내가 편지를 아프리카로 보낸 것을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던 그분이 내게 아프리카 애들이 종이 질이 좋아 휴지나 연습장으로 재활용했을 거라고 했다. 나는 아프리카인 뭐시기님에게 종이를 선물한 것인가?
계절학기를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니 에티오피아에서 편지가 와 있었다.
"네가 살아 돌아왔구나!"
드디어 하나가 살아 돌아왔다. 그 기분을 뭐라고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없었다. 먼 길로, 살아돌아올 가망이 없는 사지로 보낸 탐험대가 무사히 목적을 달성해 돌아와 내 앞에 서서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는 느낌. 한낱 종이조각 하나가 비행기를 타고 저 먼 아프리카 에티오피아까지 무비자 입국하여 체류하다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물론 편지였으니 무비자 입국이라고 추방당하거나 불법체류라고 추방당할 일이야 없겠지만...나도 못 간 곳을 이것이 먼저 다녀왔다! 그리고 그쪽의 무언가가...비록 도장 몇 개 찍힌 것 외에는 변함 없었지만 너무나도 큰 감동과 감격이 밀려왔다.
그렇게 한 개만 살아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전부 사망.
또 잊고 살고 있었다. 고향에서 봄을 맞이하는데 이번에는 에리트레아에서 살아 돌아왔다. 2008년 3월 14일.
머리속에서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는 아프리카의 선진국으로 탈바꿈했다. 편지를 잘 돌려보내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9월에 보내서 3월에 돌아왔으면 7개월 걸렸다. 이 정도는 '아프리카니까'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편지는 오지 않았다...
정말 덥던 2008년 7월 5일. 가뜩이나 여러 일이 있어 정신 없는데 아버지가 편지가 왔다며 내게 건네주었다. 세네갈에서 온 녀석이었다.
"푸학!"
거의 1년 걸렸다. 도장을 보니 세네갈에 들어가기는 잘 들어간 것 같은데 꽤 오래 있다 돌아왔다. 세네갈이 관광으로 유명하고 파리-다카르 랠리도 있고 이래저래 아프리카에서는 괜찮은 나라라고 하던데 그래서 장기체류하다 오셨나? 솔직히 10개월은 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제는 그냥 살아온 것이 기적. 거의 0%에 수렴하는 확률이 현실이 된 것이었다.
2009년 봄. 이것은 날짜를 정확히 모르겠다. 하여간 봄이었다. 3월쯤이었던 것 같다.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내게 편지가 왔다고 했다. 뭐 외국에서 왔는데 반송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내려갈 때까지 손대지 말고 잘 두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석과의 만남은 5월에야 이루어졌다. 예비군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서야 어디 갔다 온 녀석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모리타니!!!!!
사막밖에 없는 나라. 그냥 사막밖에 없는 나라. 영화를 봐도 그냥 황량하고 사막밖에 없는 나라. Heremakono라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를 찍은 감독의 나라. 하여간 그냥 사막. 척박함 등등등...
이놈은 대체 뭘 하다가 1년 반이나 되어서 돌아왔을까? 반갑기도 했지만 왠지 기적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그냥 웃음만 나왔다. 2007년에 내가 보낸 녀석이 이제야 힘겨운 여정을 마치고 돌아왔구나...그런데 힘겨운 여정일까? 하긴...그 사막 황량함 속에서 1년 넘게 있으려면 꽤나 고생했겠지. 아랍어는 좀 늘어서 왔니? 거기에서 먼지 좀 먹느라 고생했겠구나. 그래도 정말 돌아와서 다행이다. 돌아와서 다행이다. 돌아와서 다행이야...나의 과거. 나의 추억. 그것까지 가지고 돌아오느라 정말 고생 많이 했어.
이렇게 4개국에서 편지가 돌아왔다. 나머지는 아직 소식이 없다. 아마 안 돌아올 것 같다.
다시 한 번 이것을 해보고 싶다. 그런데 이게 한 번 부치면 최소 1년은 잡아야 하기 때문에 차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과거로부터 온 편지...나의 추억을 짊어메고 먼 길을 떠나 새로운 추억을 구해온다.